시작하며
여행, 흔히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의 궁궐들, 가까이 있어 잘 아는 것 같아도 막상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이 어떻게 다르고, 또 그 안의 많은 건물들은 각각 어떤 용도이고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면 잘 몰라요. 누군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머쓱해집니다. 부랴부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안내판을 살피게 됩니다.
특히 문화재 쪽 여행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여행에 앞서 사전 공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 고궁 여행, 그 첫 번째 시리즈로 경복궁, 정리합니다. 글과 사진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서 가져온 공공저작물로 편집, 구성하였습니다.
경복궁 관람에 필요한 정보 안내
경복궁의 역사와 경복궁에서 만날 수 있는 국보와 보물, 그리고 여행에 꼭 필요한 궁궐배치와 편의시설에 관한 안내도, 교통편/주차와 요금/관람시간과 입장료(고궁통합권, 무료안내 포함)/해설안내 등 관람에 필요한 정보는 아래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하루 두 번 만날 수 있는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에 관한 정보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서울 고궁 여행 ] 경복궁 알고 가면 시간 절약, 돈 절약
경복궁 구석구석 제대로 알기 (上)
궁성과 문 : 궁성(담장), 광화문,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 동십자각
*볼거리 : 궁성(담장), 광화문,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 동십자각
궁성 宮城 _ 담장
궁성은 궁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담장을 이른다. 경복궁의 궁성은 1398년(태조7)에 동쪽, 남쪽, 서쪽이 조성되었으며, 이때 궁성문인 건춘, 광화, 영추문도 세워졌다. 이 보다 뒤에 북쪽 담장이 완성되고 북문인 신무문도 갖추어졌다.
궁성은 거의 네모난 형태를 이루고 있고 전면 좌우 끝에는 각루(角樓)인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이 있다. 경복궁의 궁성은 임진왜란으로 궁궐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을 때에도 궁궐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현재의 궁성은 그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쌓은 것이고, 일부는 본래 위치보다 안으로 들여 쌓은 상태이다.
광화문 光化門 _ 光化 : 군주에 의한 덕화(德化)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군주에 의한 덕화(德化)’라는 뜻을 갖고 있다. 조선의 법궁에 해당하는 궁궐의 정문으로서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 마치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석축이 세 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문으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문으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또한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두어 시각을 알리는 데 사용하였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오문(午門)'으로 부르다가, 태조 3년(1395) 정도전에 의해 '정문(正門)'으로 이름을 바꾼 후, 다시 세종 8년(1426)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지어 올리면서 지금의 광화문이 되었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1968년에 경복궁 정문의 위치로 다시 옮겼으나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위치 또한 제자리를 찾지 못하였다.
현재의 광화문은 201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서 다시 복원한 것이다. 광화문 홍예 개판에는 ‘사령(四靈)’ 인 기린, 봉황, 거북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1968년 광화문 복원 시 그려진 것을 모사한 것이다.
건춘문 建春門 _ 建春 : 봄을 세우다
건춘문은 궁성의 동쪽 문으로 만물의 기운이 움트는 ‘봄이 시작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주로 세자와 동궁 영역에 위치한 각사에서 일하는 신하들이 출입하던 문이다. 현재의 문은 고종 2년(1865) 경복궁 중건 당시 건립된 것이다.
영추문 迎秋門 - 迎秋 : 가을을 맞이한다
영추문은 경복궁의 서쪽문으로 ‘가을을 맞이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주로 문무백관이 출입하던 곳으로 특히 서쪽 궐내각사에 근무하던 신하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현재의 문은 1975년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된 것이다.
신무문 神武門 _ 神武 : '뛰어난 무용(武勇)' '신령스러운 현무(玄武)'
신무문은 궁성의 북쪽 문으로 북쪽 궁성이 마련되고 나서 세워진 것으로 ‘신령스러운 현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신무문 쪽은 인적이 드물었으나 신하들의 공훈을 기록해 놓은 회맹단이 있어 왕이 공신들의 충성을 다짐하는 모임이 있는 회맹제에 참석할 때에는 이 문을 이용하였다. 또 영조 때에는 숙빈 최 씨를 모신 육상궁에 참배하러 갈 때 이 신무문을 자주 이용하였다.
동십자각 東十字閣
동십자각은 궁성의 동남쪽 모서리에 서있는 각루(角樓)를 말한다. 궁성 담장이 헐리면서 현재와 같이 길 한가운데 서있게 되었다. 동십자각은 서십자각과 함께 궁성 전면 양 모서리에 궁궐 안팎을 감시할 수 있도록 세운 것인데, 서십자각은 일제강점기에 헐려버렸다.
흥례문 영역 : 흥례문, 유화문, 영제교, 근정문
*볼거리 : 흥례문과 좌우 행각, 유화문, 영제교, 근정문, 어구, 금천의 천록 등
흥례문 興禮門 _ 興禮 : 예를 일으킨다
가운데로는 백악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 즉, 금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한 어구가 있고, 어구의 중앙에는 영제교(永濟橋)라는 다리가 놓여 있다.
어구(御溝)는 경복궁뿐만 아니라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에도 있으며, 고려궁궐, 중국의 궁궐, 베트남의 궁궐에도 있어 동아시아 지역의 궁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구와 영제교는 근정문(勤政門)에서 이루어지는 왕과 신하들이 조회를 할 때 신하들이 도열할 위치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유화문 維和門 _維和 : 維는 어조사, 和는 온화함
신료들이 서쪽 궐내각사와 빈청을 드나들던 문으로 흥례문 행각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근정문 勤政門 _ 勤政 : 정치를 부지런히 함
근정문에서는 왕과 문무백관이 조참의식(작은 조회)을 행하였다. 또는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하였는데, 단종은 근정문에서 즉위를 한 첫 번째 왕이다.
근정문에서 의례를 거행할 때는 영제교를 중심으로 북쪽에 2품 이상의 관원이 서고, 남쪽에 3품 이하의 관원이 정렬하였다. 흥례문 일곽에서는 조회뿐만 아니라 국문이나 교서반포 등도 이루어졌다
정전영역 : 근정전(국보), 근정문 및 행각(보물)
*볼거리 : 근정전(근정전 내부의 어좌, 내부모습, 근정전천장의 칠조룡), 하월대 답도, 상월대 답도, 근정전 월대 위에서 바라본 근정문, 근정전 월대의 조각상, 동서행각과 용문루 용무루, 청동향로, 품계석, 무쇠드므, 근정전마당의 차일고리 등
근정전 勤政殿 _ 勤政 : 정치를 부지런히 함
근정전은 국보로 경복궁의 정전(正殿)이다.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뜻이 담겨 있는 근정전은 국가와 왕을 표현하는 상징물로서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었다.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 또한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중층으로 꾸미고 기둥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 기둥에도 4 신상과 12 지신상을 재치 있게 조각해 놓았다.
2단으로 된 월대에는 정면 중앙에 답도를 두어 봉황을 조각하고, 그 좌우에는 작은 계석을 놓고 계석의 우석으로 해태를 조각했다. 계석 측면에는 당초문을 새기고 근정전 기단 상부에는 전석을 깔고, 전면 좌우에 청동 향로를 배치하였으며 하월대 동·서측 계단 옆에 무쇠 드므를 놓아 화재에 대비했다.
정전의 안쪽은 바닥에 전돌을 깔고, 2층까지 높게 트이도록 하였으며, 북쪽 가운데에 임금님의 어좌를 설치하였다. 어좌 뒤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의 산이 그려진 ‘일월오봉도’를 놓았고 천장에는 칠조룡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근정전 전면에는 중요행사를 치를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왕의 즉위나 외국 사신접대 등의 큰 행사는 근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때 신하들은 마당에 놓인 품계석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마당에는 돌을 얇고 네모나게 다듬은 박석이 깔려 있는데, 표면을 약간 거칠게 마무리하여 단조롭지 않고 빛이 반사되어도 눈이 부시지 않도록 했다. 이 마당에서는 노인들을 격려하는 기로연(耆老宴)이나 과거시험도 치러졌다.
남쪽 행각의 가운데에는 3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근정문이 있으며 그 좌우에 일화문(日華門 - 日華 : 해의 정화)과 월화문(月華門 - 月華 : 달의 정화)이 있고 동쪽 행각에는 융문루(隆文樓), 서쪽 행각에는 융무루(隆武樓)가 있다.
근정전 동서 행각에 있는 융문루와 융무루는 정전 영역의 밖으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왕과 왕세자, 궐내각사의 신료들이 보던 책을 보관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융문루와 융무루는 문(文)으로써 다스리고 무(武)로써 난을 안정시킨다는 뜻의 이름이다.
한편 근정문은 왕과 신하가 만나는 조참(朝參) 행사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왕은 근정문의 가운데 칸에 어좌를 설치하고 남향으로 앉고, 신하들은 흥례문 일곽에 도열하여 임금에게 예를 올렸다. 즉, 근정문은 단지 드나드는 출입문의 역할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곳이었다.
편전영역 : 사정전(보물) 수정전(보물), 만추전, 천추전
* 볼거리 : 보물 사정전(사정전 내부, 사정전 천장구조, 사정전 운릉도), 강녕전 서편우물, 보물 수정전, 동편전 만춘전(만춘전 대청마루, 만춘전 동온돌방), 서편전 천추전(천추전 대청마루, 천추전 동온돌방) 등
편전(便殿)은 왕이 평소에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는 곳이다. 또 종친, 대신들과 함께 주연을 즐기고, 왕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과거 시험을 치르기도 한 곳이다. 경복궁의 편전 영역은 사정전(思政殿 - 思政 : 선정(善政)을 생각함)을 중심으로, 수정전, 만추전, 천추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근정전 영역으로 통하는 사정문과 침전영역으로 통하는 향오문 사이에 사정전, 만춘전(萬春殿 - 萬春 : 만년의 봄, 오랜 시간 국가가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천추전(千秋殿 - 千秋 : 천년의 가을, 국가 기틀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이 남향으로 배치돼 있으며, 그 주변을 행각이 감싸고 있다.
편전 영역의 중심 건물은 사정전이다.
사정전은 고종 4년(1867)에 중건한 건물로 어좌를 가운데 설치하였으며 벽에는 구름 속에 놀고 있는 용을 그려 걸었다. 온돌이 없는 사정전은 더운 여름철에 정사를 보거나 경연을 하기에는 별 무리가 없었을 것이나 한기가 드는 겨울에는 특별한 장치를 하지 않고는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사정전의 좌우에 있는 만춘전과 천추전은 편전의 기능을 보완하였는데 이곳에는 온돌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추운 겨울철에는 경연이나 정무를 이곳에서 보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경회루 연지 남쪽에 위치한 수정전은 세종대에 집현전이 위치한 궐내각사 지역에 고종대에 새로 지은 전각이다. 고종대 초기에는 임시로 편전의 역할도 하였으며, 1894년 갑오개혁 당시에는 내각 본부인 군국기무처로 사용되었다.
사정전과 사정문의 이름은 정도전이 지은 것으로 ‘천하의 이치를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 임금이 진실로 깊이 생각하고 세밀히 살피지 않으면 어떻게 사리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더욱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경연과 정사가 주 기능인 편전에 걸맞은 이름이다. 사정문은 3간으로 되어 있다. 이 문 역시 가운데 칸은 왕이 드나들 때 사용하였으며, 신하들은 좌우의 문을 이용하였다.
침전영역 : 강녕전, 교태전, 아미산 굴뚝(보물)
*볼거리 : 강녕전(강녕전 내부 천장무늬, 강녕전 굴뚝과 북측담장의 천세만세 문자도, 만수무강 무늬), 양의문, 교태전(교태전 천장, 교태전에서 바라본 강녕전 일곽. 자경전에서 본 교태전), 연휘문, 교태전 후원 아미산, 교태전 담장, 굴뚝 동물문양전, 흠경각, 자경전에서 본 침전일곽 등
사정전을 뒤돌아 가면 행각에 이어 있는 향오문이 나오는데 이곳이 궁궐의 침전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경복궁에는 왕과 왕비의 침전영역이 둘로 구분되어 있다. 하나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이고, 다른 하나는 강녕전의 후면에 있는 양의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이다.
궁궐에서 침전은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며,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내진연)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사와 관련한 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은밀히 정사를 논의하는 곳 또한 침전이다.
강녕전
강녕전은 세종 때에 임금이 오래 머물 곳이라 하여 규모를 크게 하여 고친 후 온돌을 수리하는 도중 화재가 발생하는 등 세 차례의 화재를 당하였다. 이 역시 경복궁 중건공사 때 다시 세워졌으나 1918년 창덕궁의 침전이 소실되자 그 목재를 조달한다는 목적으로 헐렸으며 1920년 창덕궁의 희정당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강녕전의 공간구성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전면에 넓은 월대를 꾸민 것이 특징이다. 이 월대는 의례를 행하는 공간으로 내진연, 외진연 등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잔치 때에는 주변에 보계(補階)를 설치하여 보조하기도 하였다.
교태전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도 강녕전과 같은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다만 전면에 월대가 없는 것이 다르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공간구성뿐만 아니라 집의 구조도 같은데 지붕꼭대기에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고 내부에는 종도리를 두 개 나란히 두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침전이 이와 같이 용마루를 두지 않는 것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교태전 또한 강녕전과 같은 시기에 헐렸으며, 창덕궁의 대조전을 짓는데 활용되었다.
아미산
아미산은 교태전의 후원으로 교태전 뒤쪽으로 인공으로 조성한 언덕이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산의 이름을 빌어 ‘아미산’이라 하였다. 아미산에는 다양한 화초를 심어 화계를 꾸미고 호수나 연못을 상징하는 모양의 석함(石函)을 두어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을 조성하였다.
한편 교태전 온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굴뚝을 세웠는데 굴뚝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하여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각 무늬는 벽돌을 짜 맞추어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흠경각 欽敬閣 _ 欽敬 : 하늘을 공경하여 공손히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을 줌
세종 20년(1438) 장영실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흠경각에는 절기와 시간을 알리는 자동 천문 물시계로 알려진 옥루기륜(玉漏機輪)이 설치되었다.
경복궁 上편을 마치며
경복궁 하나만 하더라도 제대로 살펴보기 어렵네요. 일단 여기서 1부 마칩니다.
자경전 영역, 동궁 영역, 경회루, 향원지와 향원정, 태원전, 건청궁, 집옥재 영역은 2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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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궁능유적본보 | 경복궁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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