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 왕들의 사랑을 받으며 실질적인 법궁 역할을 했던 창덕궁, 그런 만큼 이야기도 많고 볼거리도 많습니다. ‘창덕궁의 전각, 제대로 알고 가기’ 상(上) 편으로 돈화문과 금천교, 궐내각사, 인정문, 인정전 살펴봅니다.
창덕궁의 문화재들
창덕궁 여행에서 챙겨봐야 할 문화재들입니다. 창덕궁엔 국보와 보물 외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깊은 나무들, 그 외 등록문화재도 있습니다.
- 국보 : 창덕궁 인정전
- 보물 : 창덕궁 돈화문, 인정문,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구 선원전, 금천교, 부용정, 낙선재, 주합루, 연경당
- 천연기념물 : 창덕궁 향나무, 창덕궁 다래나무, 창덕궁 뽕나무, 창덕궁 회화나무군
- 등록문화재 : 창덕궁 경훈각 조일선관도, 창덕궁 경훈각 삼선관파도
창덕궁의 전각들
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에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 시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궁궐전각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뒤 태종대에 돈화문이 건립되었고 세조대에 후원을 넓혀 15만여 평의 규모로 궁의 경역을 확장하였습니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 때부터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이었습니다. 창덕궁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장소로 쓰이던 인정전, 국가의 정사를 논하던 선정전 등의 치조공간이 있으며, 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희정당, 대조전 등의 침전공간, 그리고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후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건물배치에 있어 경복궁이 정문으로부터 정전, 편전, 침전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해 궁궐의 위엄성을 강조한 반면, 창덕궁은 정문인 돈화문이 정남향이고, 궁 안의 금천교가 동향으로 진입되어 있으며 인정전, 선정전 등은 북쪽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편전과 침전은 모두 정전의 동쪽에 전개되는 등 건물배치가 여러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오늘날 창덕궁은 자연지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자연스러운 산세에 의지해, 건물이 자연 속에 포근히 자리 잡도록 한 배치로 인해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완전한 건축의 표상으로 꼽힙니다. 창덕궁은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 조선시대의 전통건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후원은 동양조경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점으로 창덕궁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창덕궁 전각, 제대로 알고 가기
전각 개요
창덕궁은 크게 돈화문과 그 주변(돈화문, 금천과 금천교, 궐내각사), 외전영역(인정전과 선정전을 중심으로 한 치조 영역), 내전영역(희정당과 대조전을 중심으로 한 침전 영역), 동쪽의 낙선재 영역, 그리고 북쪽의 후원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 먼저 돈화문과 금천교, 궐내각사, 인정전, 선정전을 살펴보겠습니다.
돈화문(敦化門) _창덕궁의 정문
敦化 : 교화를 돈독하게 한다는 뜻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습니다. 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 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습니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앞으로는 넓은 월대를 두어 궁궐 정문으로서의 위엄을 갖추었습니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습니다. 원래 돈화문 2층 누각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고 합니다.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습니다가 1609년에 광해군 때 복원되었으며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돼 현재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궐내각사(闕內各司) _ 궁궐 내의 중앙 관서
궐내각사(闕內各司)는 궁궐 내에 설치된 여러 관청을 뜻합니다.
조선왕조의 중앙 관청은 궁궐 안에 설치된 궐내각사와 궁궐 밖에 설치된 궐외각사(闕內各司)로 구분됩니다. 궐내각사는 국왕 보좌 또는 왕실 업무와 직접 관계된 관청으로 승정원, 규장각, 홍문관, 예문관, 선전관청, 오위도총부, 세자시강원, 세자익위사, 내의원 등이 대표적이며, 궐외각사는 의정부, 육조, 충훈부, 의금부, 사헌부, 사간원, 사역원 등의 일반 관청입니다.
궐내각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인정전 서쪽 지역에는 금천을 경계로 동편에 약방, 옥당(홍문관), 예문관이 있고, 서편에 내각(규장각), 봉모당(奉謨堂), 대유재(大酉齋), 소유재 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근위 관청이며, 여러 부서가 밀집되어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규장각, 대유재, 소유재는 단순한 도서관으로 기능이 변했다가, 그나마도 소장 도서들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옮기면서 규장각과 봉모당 등 모든 궁궐전각들이 헐리고 도로와 잔디밭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2000~2004년에 복원된 것들입니다.
금천교(錦川橋)
금천교는 창덕궁의 돈화문과 진선문(進善門) 사이를 지나가는 명당수(明堂水), 금천 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창덕궁의 금천(禁川)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 돈화문 오른쪽까지 와서 궐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어구(御溝 : 대궐 안에서 흘러나오는 개천) 물가에는 화강석으로 축대를 설치하고, 여기에 금천교를 놓아 궐내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금천교는 창덕궁이 창건되고 6년 뒤인 1411년에 진선문 밖 어구에 설치되었는데,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불구하고 창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궁궐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각상과 아름다운 문양, 견고하고 장중한 축조 기술이 돋보이는 이중 홍예교로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가 뛰어납니다.
인정문(仁政門)과 인정전(仁政殿)
仁政 : 어진 정치
인정문(仁政門) _ 인정전의 정문
인정문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의 정문입니다.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만든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습니다. 건물 안쪽 천장은 천장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며, 단청은 소박하게 꾸몄습니다.
인정문은 왕위를 이어받는 의식이 거행되던 곳으로, 정전인 인정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위엄과 격식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입니다.
인정전(仁政殿) _창덕궁의 정전(正殿)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 의식을 치르던 곳입니다. 앞쪽으로 의식을 치르는 마당인 조정(朝廷)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북한산의 응봉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2단의 월대 위에 웅장한 중층 궁궐전각으로 세워져 당당해 보이는데, 월대의 높이가 낮고 난간도 달지 않아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하면 소박한 모습입니다.
인정전은 겉보기에는 2층이지만 실제로는 통층 건물로 화려하고 높은 천장을 볼 수 있습니다. 바닥에는 원래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되어 있습니다. 전등, 커튼, 유리 창문 등과 함께 1908년에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입니다. 인정문 밖 외행각(外行閣)에는 호위청과 상서원 등 여러 관청들을 두었습니다.
1405년(태종 5)에 창덕궁 창건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1418년(태종 18) 박자청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 2)에 재건, 1803년(순조 3)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복원해 현재에 이릅니다. 외행각 일원은 1991년 이후에 복원했습니다.
인정전 안에는 정면에 임금님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과 곡병 뒤로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병풍이 있습니다. 병풍에는 음양을 뜻하는 해와 달이 있는데 이는 왕과 왕비를 상징합니다. 그 아래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우리나라의 동, 서, 남, 북, 중앙의 다섯 산을 가리키는데 이는 국토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유리창을 비롯하여 전구나 커튼 등 서양 장신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구한말 외국과의 수교 후 다양한 외래 문물이 들어온 것이며,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한 후에 인정전의 실내바닥이 전돌에서 마루로 바뀌고, 전구가 설치되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마치며
내용이 많아 ‘창덕궁 전각, 제대로 알고 가기’를 상(上) - 하(下) 편으로 나누었습니다. 하편에서는 창덕궁의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과 대조전, 그리고 헌종의 서재였던 낙선재를 이어갑니다.
* 내용은 궁능유적본부와 창덕궁 누리집 자료를 토대로 하였으나, 구성과 편집에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자료 사용하시는 분들은 출처와 링크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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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이트 및 출처 : 궁능유적본부 | 창덕궁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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