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홍매화를 볼 수 있는 성정각 인근에는 살구나무도 있습니다.
홍매가 성정각의 담장 바깥에 위치해 있다면 살구나무는 안쪽에 위치해 있는데, 이 역시 우뚝 속은 키가 수령 깊어 보입니다. 이맘때면 홍매화와 살구꽃은 담장 하나를 두고 멋진 하모니를 연출합니다.
만첩홍매와 살구꽃의 하모니
2023년 3월 23일 갔을 때 성정매와 살구꽃은 개화 상태가 엇비슷했고, 두 꽃은 담장 위에서 멋진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진분홍빛의 홍매와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빛의 살구꽃 송이들이 뒤섞여 이루어내는 하모니! 보는 각도에 따라 고색창연한 흑빛 기와가 배경이 되기도 하고 푸른 하늘이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살구나무 이야기
이야기 나온 김에 살구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살구나무숲, 행림(杏林 )
행림(杏林 ) 즉 살구나무숲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의사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유래가 있습니다.
옛날 중국에 동봉(董奉)이라는 의사가 여산(廬山)에 살았는데, 그는 치료를 해주고 그 사례로 병이 심한 사람에게는 살구나무 5그루를, 경미한 사람에게는 한 그루를 심게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보니 그의 집 근처에는 수십만 그루의 살구나무가 숲을 이루게 되었고, 이에 동봉은 자신의 호를 동선행림(董仙杏林)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살구나무의 효험
옛날 사람들은 살구나무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산길을 갈 때 살구나무 지팡이나 살구나무 목탁을 들고 다니면 맹수가 덤비지 않는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살구나무로 목탁을 만들면 그 어떤 나무로 만든 목탁소리보다 청아하고 맑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 선조들은 살구나무 목재를 몇 년 동안 물에 담갔다가 빨래 다듬잇대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하면 단단해 절대로 갈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를 죽이는 살구(殺狗)
한편 살구나무에는 섬뜩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살구나무의 살구(殺狗)를 ‘개를 죽인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입니다. 살구나무에 이런 이름이 붙은 데는 살구의 열매, 즉 행인(杏仁)에 독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방에서 적절히 사용한 행인은 기침을 멎게 하고 또 살구씨 가루는 미용 측면에서 기미나 주근깨를 완화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우리에겐 정겨운 살구꽃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동요 「고향의 봄」에는 살구꽃이 등장합니다.
뿐만이 아니라 이호우의 시조 ‘살구꽃 피는 마을’ 또한 정겹게 다가옵니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이렇듯 살구꽃은 우리에게 고향과 닿아있는 정겨운 꽃입니다.
이맘때 봄이면 연분홍 빛 화사하게 빛나고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분분히 날리는 꽃잎, 모두 봄에 누릴 수 있는 낭만이요 정취입니다. 창덕궁에 홍매를 보러 가시거든 살구꽃도 보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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